전례

[강정 생명 평화 미사] 17. 10. 11

10/11(

강정 생명평화 길바닥 미사! 

문창우주교님 문정현신부님 집전하였습니다.

 

변함없이 강정 오시는 문창우 주교님!

고맙습니다!!

 

 ?*매일 오전 11시 (일요일제외) 구 해군기지공사장 정문 천막에서 봉헌됩니다*   

 

 

<연중 제 27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요즘 한반도의 상황을 둘러싼 긴장은 미국의 트럼프 연속적인 막말과 김정은의 북핵을 내건 위협놀이의 줄다리기 속에 세계 모두는 어느 때보다 전쟁의 가능성과 함께 나름대로의 외교적인 묘책을 찾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4일은 꾸준한 대화의 결실로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체제, 정치·군사·경제협력, 사회문화 교류 등 중장기적 남북관계 과제를 담은 ‘10·4 남북정상선언’이 발표된 지 꼭 10년을 맞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 맞는 10·4 선언 기념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기도 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 합의를 이끌어낸 이후 9년 동안의 보수정권에서 10·4 선언은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의미가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10·4 남북정상선언 뿌리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의 6·15 공동선언입니다. 이를 통해 남북은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서해평화수역 조성 등을 통한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 및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항구적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습니다. 또 민족경제·문화·인도주의 협력사업의 교류·협력 강화를 통한 공동번영과 균형적 발전 협력 등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10·4 공동선언은 당시에도 현실적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임기를 4개월여 남겨둔 노무현 정부가 이처럼 높은 수준의 남북 간 합의를 한 것은 차기 정부에 이행 의무를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당시에는 차기 보수정권 탄생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단계여서 이 합의는 보수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태생부터 이행되기 어려운 합의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10·4 공동선언은 철저히 배척받았습니다. 


합의 이행은커녕 5·24 조치로 남북교류가 완전히 차단되고 남북화해의 상징물이었던 개성공단도 문을 닫았으며 대화채널은 모두 단절됐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한 긴장완화가 최우선 국가 과제로 떠오를 만큼 한반도 정세가 악화됐습니다. 남측의 보수정권도 10·4 공동선언을 철저히 무시했지만, 북한 역시 핵·미사일 프로그램 고도화에 매달리고 위협의 강도를 높이면서 10·4 공동선언에서 더욱 멀어져갔습니다. 그러나 10·4 공동선언이 아무 쓸모없는 종이조각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 선언이 담고 있는 내용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통일의 기초로서 반드시 이뤄야 할 요소입니다. 당장 이행할 수 있는 합의는 아니지만 ‘지향해야 할 가치’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아시는 것처럼 강정에서도 평화 활동가중 한분인 오두희 자매님이 전하는 강정이야기에 따르면, 9월 26일 오전 10시 미 해군 소해함 14번 치프(USS Chief MCM-14)가 제주 해군기지에 정박했습니다. 치프 함은 올해 들어 4번째 입항했고 6번째 외국 군함이라고 합니다. 올해 들어 외국 군함의 제주 해군기지 입항이 줄을 이었습니다. 3월 25일 미군 이지스구축함 스테데 함, 6월 20일 듀이 이지스 구축함, 6월 22일 캐나다 호위함 2척(위니펙, 오타와), 8월 15일에서 8월 30일까지 15일 동안 미군 측량함 핸슨 함이 제주 해군기지 인근 바다를 조사하고 간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기뢰제거함이 제주 해군기지에 장기 정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강정마을회 고권일 부회장은 “지난 8월 15일에서 8월 30일까지 15일 동안 미군 측량함이 제주 해군기지 부근 항로와 인근 바다를 헤집으며 은밀하게 무슨 조사활동을 벌이고 갔는지, 왜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함이 제주 해군기지에 들어와 일주일 이상 머무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범대위 홍기룡 대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당시 정부와 해군은 제주 해군기지가 남방 해양 수송로 보호와 해양 영토 및 자원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건설 명분과는 달리 최근의 불안정한 북미 간의 갈등을 핑계로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미 해군의 대중국 전략에 이용될 전초기지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9월 29일 제주 해군기지 반대대책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군은 외국 군함이 제주 바당(‘바다’의 방언)을 제집 드나들 듯이 기습적으로 들어와 비밀리에 어떤 군사작전을 하고 있는지 밝히라”며 “왜 제주도민과 주민들에게 그 목적을 알리지도 않는지, 제주도정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원희룡 도지사는 도민과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건설 당시의 목적에 부합하게 제주해군기지가 운용되는지 철저하게 감시활동을 해야 하며 그 내용을 도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제주 해군기지에 이어 제주 제2공항에 공군부대를 설치할 계획이라 하는데, 4.3사건의 아픈 역사를 딛고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가 내년 4.3 70주년, 송악산 공군기지 반대투쟁 30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도민의 희생을 불러올 군사화의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며 걱정했습니다. 


이제 제주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위한 전초기지로 되느냐, 평화의 섬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제주 해군기지는 그 건설 과정과 용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재평가를 통해 새롭게 자리매겨야 합니다. 그 길만이,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남는 것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으로부터 동아시아의 바다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길입니다. 이제 오늘 복음을 함께 묵상해보겠습니다. 주변에서 갓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신부님에게 주로 묻는 물음이 ? 기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고 제대로 된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입니다. 몇 십 년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씩은 볼멘소리를 합니다. ? 도대체 기도할 시간이 안 난다. 기도하기가 너무 힘들다. ? 기도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왜 기도하는 것이 힘든 것인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도라는 것을 기도문에 나오는 것만이 기도인 줄을 알고, 기도문에 나오는 기도들을 시간에 맞춰서 다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기도라는 것을 하느님과 함께 나누는 대화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화는 대부분 하느님과 개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기도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여기게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개인적인 것에만 너무나 한정되어 버리면, 거기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나아가 믿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당신의 사도좌 권고 ? 복음의 기쁨 ? 2항에서 그 위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 ?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지고, 그러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 ? 기도는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공동체가 함께 할 수도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기도 안에는 기쁨과 즐거움, 행복과 감사, 찬미, 영광 이런 것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염원, 희망, 절망, 아픔, 슬픔, 울분, 억울함도 다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능수능란한 언어 사용과 현란한 수식어로 가득 찬 아름다운 문장만이 기도가 아니며, 기도문에 나오는 기도만이 기도도 아닙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말로 가득찬 기도만이 기도도 아닙니다. 때로는 불평도, 불만도, 울분에 가득 찬 소리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소리들이 정녕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께 그렇게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 주님, 주님,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친히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인 것입니다. 신자가 되는 순간, 아니,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세례 받고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들이 제일 많이 해야 하는 기도가 소위 주모경이고, 그 중에서도 주님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시면서, 형식화되고, 외우기 쉬운 기도문을 알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된 기도를 하느님께 말씀드리라고 하면서 가르쳐 주신 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에 보면, 산상 설교에서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첫대목은 이렇습니다 ? 아버지 ?. 나만을 위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평등하게 부를 수 있는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 아버지 ?라고 부를 때에는 적어도 우리가 그 분의 사랑스런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태생이 어떠하든, 부자이건, 가난하건, 힘이 있건 힘이 없건, 힘없는 자를 무시해서도 안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괄시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이 ? 아버지 ?라는 호칭에 들어 가 있습니다. 이어서,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내시며 ?.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려면, 내가 아버지의 아들 딸로서 제대로 살아야 가능합니다. 다음은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려면 내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해 내 삶의 자리에서 무언가 일을 해야 합니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주님의 기도 후반부에 나옵니다. ?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라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일용한 양식은 이미 하느님께서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빈부의 갈등을 덜 느끼고,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동등한 인격체로서 만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는 기도가 바로 ?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라는 기도입니다. 이어 ?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라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용서 !!! 많은 사람들이 용서한다는 것을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더 이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과거의 잘못을 잊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성경에서, 누가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내놓으라는 주님의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동등하게 어려운 말씀이 모두가 ? 용서하라 ?는 말씀입니다. 너무나도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입으로는 용서하겠다, 용서하였다고 해도 미운 놈 만나면 다시 속에서 부아가 치미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마치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용서하겠노라고 말한다 해도, 화해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화해라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자기 잘못을 제대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니 용서하는 것은 곧 화해하는 것이라는 혼돈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용서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 제가 용서를 베풀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를 받는 측에서도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 때 효과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보상하려고 할 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용서를 하는 것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은 별개입니다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읽고 있는 주님의 기도 대목을 하나하나 다 살펴보려면, 오늘 하루 종일 지내도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간단하게 몇 구절만 살펴보았습니다. 오늘하루 우리모두가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주님의 기도를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음미해 봄이 어떻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정말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강정의 미사와 기도는 참된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진정 그분이 매일 바라시는 주님을 향한 기도 속에 우리들의 실천과 연대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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