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강우일 주교님 강정생명평화미사(9월)

센터알리미 0 2 16:02

연중26주간 수요일 2026.9.30. 강정

욥 9,1-12.14-16 루카 9,57-62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과 함께 걷는 길,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이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상식적인 길과는 아주 다른 예외적인 인생길임을 말씀을 하신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단한 결심을 표명한 사람에게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하며 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무슨 생각이신지 ‘나를 따라라.’ 하고 예수님이 지명을 하신다. 그러나 그 사람은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하고 허락을 청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하고 언짢은 듯한 대꾸를 하신다.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핀잔을 주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예수님과 길이 어긋난다. 핀트가 안 맞는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일은 유다인 뿐만 아니라 어느 민족도 이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부모상이 났다면 다 그쪽을 먼저 달려가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제주교구에서는 육지 다른 교구와 달리 어느 신자 집에 초상이 나면 사제가 몹시 바빠진다. 우선 초상 소식을 들으면 연도를 바치러 상가 집에 간다. 두 번째로 ‘일포’라고 해서 발인 전날, 친지들이 문상을 가서 조의금을 건네고 상가 집에서 대접하는 저녁상을 꼭 먹고 나오는 관습이 있다. 그래서 본당신부도 이때는 꼭 방문한다. 그리고 다음 날 장례미사를 지낸다. 또 시간이 허락하면 장지까지 가주는 사제들도 있다. 그러니 고인을 위해 네 번 시간을 내서 유가족들 만나고 기도해 준다. 육지 교구에서는 대부분 장례미사 한 번 지내는 것으로 끝난다. 그만큼 제주에서는 장례가 아주 중요한 문화다.

 

유다인들에게도 장례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유다인의 관습에서 보통은 장례에 참석하면 죽은 자의 몸과 가까이 함으로써 부정을 타게 됨으로 사제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상례라도 한다. 그러나 부모 장례가 났을 때에는 예외를 인정받고 사제 직무 중이라도 관면을 받고 장례에 참석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부모 장례보다 당신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전하고 선포하는 제자의 일을 더 우선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아주 중대한 결심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해도, 집에 가서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잠시 묵다 가는 손님도 주인에게 신세를 졌으면 당연히 떠날 때는 인사를 하고 갈 줄 안다. 하물며 일생을 부모 은혜와 가족의 사랑 속에 살아온 인간이 그 가족에게 인사도 없이 집을 떠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1열왕기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 엘리사는 집에 가서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하자 엘리야는 얼마든지 갔다 오라고 했고, 엘리사는 소를 잡아 잔치를 열고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한 다음 엘리야를 따라갔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전하는 일은 그보다 더 긴급하고 중차대한 일이라고 가르치신다.

 

언젠가 내가 서울에서 가톨릭대학 총장으로 있었던 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전국의 대학 총장들을 영빈관으로 초대하여 만남을 갖고자 한다고 교육부에서 이틀 전에 연락이 왔다. 나는 대학 총장들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이틀 전에 연락하는 법이 어디 있냐며 무시하고 안 가려고 했는데 대학교 본부 직원들이 그래도 꼭 가야 한다고 해서 기분이 안 좋았지만 툴툴거리며 갔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나는 청와대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전국 모든 지역에서 모든 대학 총장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있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온 대학 총장들을 보고, 야 대통령이란 대단한 권력이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하고 특별히 지명해서 초대하신 부르심에 응답하는 길은 대통령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특혜이고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초대하신 길이다.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러 오신 예수님이 부르시는 길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자랑스러운 길인지를 안다면 우리는 정말 만사를 제쳐놓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달려갈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함 때문에 이런 인간적인 영예나 자랑거리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긴다고 천명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부르심의 길은 정말 너무나 과분하고 엄청난 영광의 길이다. 제주에서 시골 동네에 지나다 보면 그 동네 출신 아무개가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아니면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고 축하 현수막이 동네 한복판에 걸려있다. 예수님이 부르시는 길, 예수님 제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걷는 하느님 나라의 길은 그런 정도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영광이요 대단한 명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주님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기회에 우리를 당신과 함께 가자고 초대하시는데, 거절하기 위한 온갖 핑계를 대며 딴 길로 새지 않는지 모르겠다. 초상이 났습니다, 친척 결혼식에 가야 합니다, 거래처 사람과 중요한 상담이 있습니다, 시험이 가까워서 공부해야 할 게 많습니다, 연구 논문을 빨리 제출해야 합니다, 회사 임원들과 회식이 있습니다, 높은 사람과 골프 약속이 있습니다, 등등 오만가지 이유를 대며 주님이 내밀어주신 손을 잡지 않고 딴 길로 새서 별 볼 일 없는 일에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며 얼마 남지 않은 촌음을 허비하고 있지 않는지 성찰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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