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강우일 주교님 강정생명평화미사(11월)

센터알리미 0 75 11.26 14:31

연중34주간 수요일 2025.11.26. 강정

다니엘 5,1-6.13-14.16-17.23-28 루카 21,12-19

 

언젠가 로마 회의에서 슬로베니아 주교를 만났을 때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자기들은 공산정권 치하에 있었을 때 성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자 사람들이 오히려 신앙을 잃어가고 성소도 줄었다고 했다. 슬로베니아 뿐이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가톨릭 신앙이 독실한 폴란드도 비슷한 상황이다. 공산 치하에서 억압받고 신앙생활의 자유가 없었을 때는 더 열심히 살았는데, 민주화된 후 정치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신자들의 신앙이 식어가고 성소도 많이 줄었다.

 

한국교회도 과거 군사독재 시절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지학순 주교님이 감옥에 가시고, 문정현, 함세웅 신부님 비롯하여 사제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정보기관에서 혹독한 강압수사를 받고 교도소에 가고 명동성당에서는 수시로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나는 70년대와 80년대 계속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담당했는데 큰 강의실에 한 번에 150-200명까지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신학교와 수녀원에 갔다. 그런데 2천 년대 들어와서 민주화가 진전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영세자가 줄고, 신자들의 신앙의 열기가 많이 식고 냉담자가 크게 불어났다. 신앙과 고난은 반비례하는 것 같다. 박해받고 가난하고 힘들 때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의지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매달리는데, 편해지고 부족함 없이 안락한 삶을 살게 되면 사람들은 하느님과 신앙과 작별하는 것 같다.

 

어제 우리는 베트남 교회의 성 안드레아 둥락과 그 동료 순교자들의 축일을 지냈다. 베트남에서는 1625년부터 1886년까지 53차례의 박해령으로 13만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베트남은 현대에 들어와서 프랑스와 싸우고 미국과 싸워 외세를 물리치고 통일을 이루기는 했지만 아직 공산주의 정권이다. 베트남 교회는 오랫동안 당국의 감시하에 살았다. 나중에 바티칸 성청의 정평위 위원장을 지낸 구엔 반 투안 추기경도 1975년부터 1988년까지 13년을 철장 안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독방에서 손바닥에 포도주 세 방울과 물 한 방울을 올리고 미사를 봉헌하셨다. 간수들이 21조로 매일 그분을 감시했다. 2주마다 새조로 바뀌는데, 주교님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랭함과 퉁명스러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주교님은 가슴 깊은 곳에서 간수들에게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라는 소리를 들었다. “예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여라!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하여라!” 다음날부터 반투안 주교님은 간수들에게 따뜻한 말과 온화한 행동으로 진실한 사랑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절하게 다가가려고 애썼다. 주교님은 옛날에 자신이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이야기, 자신이 만난 사람들, 자신이 배운 외국어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간수들도 차츰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반투안 주교님은 모든 질문에 친절히 답변을 했고, 원하면 외국어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다.

 

간수 가운데 한 명이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 해 주교님은 라틴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주교님은 외국어는 노래로 배우면 쉽다고 했더니 간수는 라틴어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투안 추기경은 ‘Salve Regina(하늘의 여왕)’, ‘Veni Creator(임하소서 성령이여)’, ‘Ave Maris Stella(바다의 별이신 성모)’ 세 곡을 불러주며, 좋아하는 곡을 고르라고 했더니 간수는 ‘Veni Creator’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 그 간수는 ‘Veni Creator’를 부르며 라틴어 공부를 했다. 투안 추기경은 간수가 성령의 오심을 청하는 노래를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행복했다. 성령께서는 수용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키셨다. 어떤 사람은 세례도 받았다.

 

정부의 엄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교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신앙이 살아있는 교회이고 성소자도 제일 많다. 시골 마을 평일 미사에도 신자들이 가득가득 참례한다. 나는 2012년 베트남 수안록에서 제10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아시아 각국 주교회의 대표들이 수안록 교구 신학교에서 모였는데 그 신학교에는 5개 교구에서 모인 신학생이 400명이나 되었다. 베트남 교회는 오랜 전쟁 속에 박해와 고난을 견디며 하느님께 의지해왔기 때문에 신앙의 은총이 아직 풍성히 열매 맺고 있는 것 같다. 근래에 우리나라 수도회들도 성소자가 거의 끊긴 상태인데 여러 회에서 베트남에서 성소자를 찾아 입회시키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신앙 때문에 박해받고 고통당하고 시련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다. 제주 교구는 여러 해 전 부르키나파소 교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한 적이 있는데 몇 해 전부터 그곳 교회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에 휘말려 본당이 불타고 사제와 신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져서 재작년에는 그곳 주교님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 옆 나라 니제르, 수단도 계속 내란 상태가 계속되어 교회도 고난을 당하고 있다. 중동 시리아, 동남아의 미얀마 등지에서 아직도 신앙 때문에 핍박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고향에서 쫓겨나고 있다. 난민 생활을 하는 수십만 명의 시련과 수난 덕분에 어쩌면 오늘의 세상에 아직 진실한 신앙이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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