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토)
강정생명평화미사
문창우 비오 주교님의 미사강론입니다.
고맙습니다.
강정 ? 연중 14주간 토요일 미사
네! 찬미예수 정말로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제가 주교로 임명되어 이곳 강정을 찾게 되어 함께 계신 문정현 신부님과 예수회신부님들, 그리고 평화활동가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오묘하고도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제 인생에 정말 큰 사고를 치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능력과 열정이 많은 다른 신부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부족하고 결점 투성이인 저를 교구의 부교구장 주교로 선택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21일 교황청 대사관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 다음날아침까지 올라오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통보의 상황이 그전에 2-3개월 전부터 교구장님의 겸손한 요청으로 비밀리에 두 차례 새 주교를 뽑으려는 사전조사가 있어 왔고 나름대로 좀 더 면밀한 조사에 대한 의견들을 수합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사관에 도착하는 순간, 교황대사님이 직접 읽어주시는 교종 프란치스꼬가 제게 보내주신 편지글을 들으며 감격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소 성당으로 이동하여 제게 교종 프란치스꼬가 전해 주신 주교의 새로운 직무에 대해 정말 동의하는지를 물었고 다시 제 머리위에 대사님의 손을 얹어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저를 정성껏 안수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제 앞에 펼쳐진 엄청난 상황에서 생긴 일에 대한 감격과 함께 계속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온 몸이 전율되면서 저는 끊임없는 찬미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이어 저에 대한 개인 서류들에 대한 확인들과 다시금 대사님이 당부하시는 교종 프란치스꼬가 당부하는 겸손한 주교로서의 직무에 있어 필요한 사항들을 열거하시다가 갑자기 다시 대사님은 강우일 주교님께 전화를 걸어 이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다시금 축하와 함께 제주교구에 부교구장 주교가 난 것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핸드폰으로 제게 휴대폰이 건네어졌습니다. 너무나 떨리고 엄청난 상황이라 말이 나오지 않았고 “제가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라며 울먹이자 주교님은 괜찮아.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며 자네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니 걱정 말라며 격려하셨습니다. 이어진 시간, 대사님과 비서인 몬시뇰과 함께 하기로 한 점심을 앞두고 저는 남은 시간을 내어 다시 소 성당으로 가서 성체 조배를 하였습니다. 정말 계속해서 내게 일어난 일이 가능한 일인가? 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어진 점심식사는 어디로 음식이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사님께서는 편안하면서도 저를 계속 다독거리시며 앞으로 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제주교구의 미래를 하느님의 뜻안에서 이루기 위해 축복하고 계시니 제게 진심어린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후 저는 대사관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오는 내내, 엄청난 사건이 제게 닥친 것을 느끼며 어떻게? 어떻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묵상하며 보내고 있던 당시 6월 생활말씀인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을 음미하며 말씀의 강한 힘이 다시금 느껴졌습니다.
이제 여기 계신 분들에게 정말 기도중에 부족한 저를 많이 기억해주시기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론 누군가에게 이렇게 새로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닥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나의 뜻에 매몰되는 삶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구체적으로 선택하며 사는 삶에서 더욱 충만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의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속적인 가치들, 가령 물질적인 욕망과 이기적 탐욕을 이끌어내는 재산, 명예, 건강 등에 매달린다 해도 인간은 한 번은 자신이 믿던 그런 가치들로 인해 받게 될 고난을 넘어서는 영적인 결단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영적 공허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깨달을 때 신앙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됩니다.
무엇보다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살이에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모순들을 생각하면, 신앙은 그런 가운데 참된 삶의 가치란 세속적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있는 참된 기쁨임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 복음의 빛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곳 강정은 딱히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제주도의 한 마을 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주신학교에서 듣게 된 강정의 현실은 점점 더 저를 이곳으로 이끌어왔습니다. 한 달에 한번 시간을 내어 강정마을에 들러 강정의 아름다움을 만나면서 또 인간의 욕망에 의해 소리 없이 죽어가는 구럼비 바위에서 죽어가는 생명의 울부짖음들이 마음으로 생생히 다가왔습니다. 또 그 소중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한 마음이 되어 애쓰시는 분들의 진심을 만나면서 강정마을은 조금씩 제 마음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저는 이곳 강정에 매달 한번씩 가능한 한 들러왔는데 들을 때마다 강정은 내 마음에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는 강정마을 미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뜻밖의 저에게 찾아온 주교임명은 너무나 무거우 짐을 생각하면서도 주님께서 저에게 보내시는 소명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동안 강정을 찾아 온전히 동참하지 못한 미안함,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이 세대의 논리를 막는 데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 등 사제로 살아가는 시간에서 강정을 향한 걸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사를 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현수막들, 이 강정마을에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하는 마음깊이 다가오는 모든 성찰들, 왜 이곳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지 함축적인 언어로 전달해주고 있었습니다.
늘 미사에 참여하면서 자리를 잡았을 때 매번 많은 분들이 건네는 연대의 힘과 옆에서 마이크를 들고 성가를 불러주시던 수녀님과 선교사님과 자매님들, 차가 늘 씽씽 지나다니고 매연과 소음이 가득한 그래서 거룩한 분위기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리는 가운데 다가오는 뜨거움은 마음 안에 담긴 우리 모두의 염원들인 이 미사를 살아있는 미사로, 가장 거룩한 제사로 만들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매번 초라하게 바쳐지는 미사였지만 이 미사는 십자가의 제사를 온전히 재현하는 그래서 미사의 본질적인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아름답고 거룩한 미사였습니다. 한때 철조망에 꽂아있던 “강정마을에 평화의 바람을”이란 문구 그리고 누군가 꽂아놓은 여러 조화.....그렇게 철조망으로 상징되던 강정의 현실, 평화의 바램을 염원하며 바치는 매일의 정성스런 봉헌 미사, 그 희망의 염원들이 만들어낸 희망의 꽃 한송이!! 이러한 강정의 풍경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매번 미사가 끝나면 공사현장을 향해 그리고 해군기지를 향해 강정의 평화를 빌며 바치는 묵주기도를 인도하는 분들, 미사와 함께 자세 흐트러지 않은 채 마음 안에 담긴 간절함을 지켜볼 때, 보는 사람마저 숙연함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강정마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마을중 하나라고 봅니다. 언제나 희망을 갖고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강정 마을에 모여 매일의 미사와 더불어 기도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함께 노력하고 있기에 분명 하느님의 정의는 이 땅에서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주님 안에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박해받을 때에 대비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격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하느님의 힘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겪은 고통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위협과 반대는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육신을 잃는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하고 마카베오서 하권 7장 14절은 전해주고 있으며,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이유는, 우리 삶을 계획하시고 보살피시는 아버지 하느님이 분명히 우리를 지켜주시고, 당신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필요한 은총과 용기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리며, 주님의 메시지를 기꺼이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됨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교황청 매스콤 위원회 위원이었던 맥루한(M. McLuhan)은 [미디어 이해]라는 책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그 원리가 어렵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쓰는 모든 도구들은 인간의 ‘확장’입니다. 자동차는 인간의 다리가 확장된 것이고, 포크레인은 인간의 팔이,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가, 마이크는 인간의 입이 확장된 것입니다. 그와 함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미디어이고, 예수님의 확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우리는 밝고 넓은 데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을 지붕 위에서 외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그 삶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 입은 예수님의 손과 발, 입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앞서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삶으로 옮겼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나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하루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성찰해 봄도 하루를 사는데 유익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 시대에 주님의 메시지를 두려움 없이 전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시 한편 들려 드립니다. 러시아 시인 , 푸슈킨(1799-1837)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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