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3일 수요일 [(홍)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마르코 9,38-40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았습니다.' 이 요한은 그 사랑에 관해서 사도들 중에 가장 깊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남긴 사도입니다. 그런 요한인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기는 하지만 자기들과, 자기네 사도들과 함께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지는 않는 사람이니까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하지 말라고 막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러지 말라. 우리 그룹에 직접 들어와서 활동은 안 해도 그 사람이 내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하니까 내버려 둬라.'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면서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으면 이렇게 내치고 편 가르기 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대선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들의 그들이 쏟아내는 말들 보면 참..서로가 상대방에게,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 온갖 비판과 성토를 서슴지 않습니다. 추정과 추리에 의해서 확실하다고 어떤..뭔가 증거가 다 구비되어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아주 심한 말로 단죄하고 욕을 하고 비난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사람들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면서 참 보기에 민망하고 딱합니다. 토론을 해도 그냥 자기 정책을 펼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 자기 계획을 그냥 설명하면 될 텐데 그것보다는 다른 후보들을 공격하는데, 다른 후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렇게 상대방을 향해서 거의 적의에 가까운 적대감 비슷한 그런 공격적인 언행을 아끼지 않는 그런 성품을 지닌 사람이 당선돼서 우리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되면 다음 정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자꾸.. 좀 관용적이지 못하고 이렇게 남을 막 물고 뜯고 이래야 직성이 풀릴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에 저에게 여러 해 전에 강정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레바논의 여성 리나라는 분이 인사를 왔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립대학 캔버라 국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했다고 그러면서 박사 논문을 아주 두툼한 것을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란 것은 그.. 리나의 학위 논문의 내용이 '현대 한국 사회의 사회 정의가 발전하고 이렇게 많이 진보하는 과정에서 가톨릭교회의 많은 사람들의 예언자적인 현실 참여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리나는 카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대사의 과정에서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받은 사제들, 정의구현사제들 그리고 수도자들 그리고 활동가들, 이들이 얼마나 일관되게 투신하고 싸워 왔고 활동해 왔는지를 보면서 자기 자신이 굉장히 감동받고, 그런 일관된 노력과 투신의 원동력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달려왔는가?' 그 이유를 찾기 위한 논문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리나는, 그 논문에서 보니까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 활동가들이 강정에서 또 밀양 송전탑에서 그리고 세월호 사태 때 그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가를 아주 상세히 들여다보았고 그들의 말을 기록하고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 안에 일관되게 흐르는 어떤 메시지를 분석하고 그 안에 일관되게 강물처럼 흐르는 거대한 흐름을 보면서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리나가 논문에 뭐라고 썼는가 하고 제가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이런 카톨릭 사제들, 수도자들, 활동가들은 한국 사회 전체에서 볼 때 그리고 한국 가톨릭 안에서 볼 때도 결코 주류가 아니고 아주 소수밖에 안 되는 비주류들이고 그들 안에 누가 뚜렷한 무슨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각각 다른 자리에서, 다른 현장에서 서로가 만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지만 하여튼 그들 안에 형성된 공통된 어떤 공감대와 연대감과 동반자 의식이 하나의 큰 어떤 흐름을 갖고 흐르는 그런 것을 보고서 일종의 경외심을 가지고 이 논문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뭐 레바논이라고 우리하고 아주 뭐 굉장히 많이 떨어진 나라의 국민이고 가톨릭 신자도 아닌 리나가 어떻게 강정까지 와서 또 이런 논문까지 썼을까..’하고 굉장히 참 궁금해하면서 논문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니까 리나는 레바논 사람으로서 어릴 적부터 굉장히 많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성장했더라고요. 레바논은 옛날에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고 아름다운 진주 같은 나라다.” 뭐 이런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스라엘과 다른 중동 이슬람 국가들 간의 갈등과 테러, 이런 것들이 확산이 되면서 레바논이 그 수많은 분쟁과 테러리즘의 어떤 한복판에 놓여있고 그러면서 옛날에 그..참 아름답고 풍요롭던 레바논이 다 망가져 버렸어요. 그러면서 수시로 폭탄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건물들이 무너져 나가고 그런 과정에서 리나는 어릴 때부터 수시로 포탄이 터지는 것을 보고, 피하기 위해서 방공호로 피신하거나 아예 지하에서 몇십 일씩. 이렇게 지하 생활을, 피난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녀는 ‘도대체 인간들이 왜 이렇게 서로 싸워야 하는지, 왜 전쟁을 벌이고 포탄을 쏘고 미사일을 쏘고 왜 이래야 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전쟁으로 내모는지, 왜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이 참.. 한 편으로 궁금하고 어떻게 하면 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서 그런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에게 논문집을 들고 왔을 때 리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많은 불의와 고통과 갈등이 있었으나 그런 다양한 현장에서 소수지만 가톨릭 활동가들, 지도자들, 성직자들이 끈질기게 싸워왔습니다. 어떤 때는 성공적인 결과도 있었지만, 또 그렇지 않고 실패로 끝난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의를 위한 활동에서 자기가 보기에 성공과 실패는 그 사사건건이 어떤 때는 성공하고 어떤 때는 실패했는데 그것이 별로 중요한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몇십 년을 두고 전혀 다른 현장에서 또 전혀 다른 사람들이 활동하면서 그 안에 서로를 잇는 눈에 안 보이는 끈이 있었고 그 끈을 통해서 서로가 힘을 주고받으면서 한국 사회는 꾸준히 더 나은 방향,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민주화된 사회로 변화되어 온 것이 아닌가! 이분들이 소수지만 그런 변화에 아주 중요한 일꾼의 역할을 해왔다.'라고 리나는 본 것입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그러겠구나!' 공감했고, 이 먼 타국의 젊은이가 제주 강정에까지 와서 이런 통찰을 이렇게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고, 그래서 '이 강정은 강정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 전국에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또 한국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여러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정말 평화의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해오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이 새삼 깊이 있게 들려옵니다.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우리와 뭐 이렇게 생각이 조금씩 다르고 행동하는 양상이 다른 다를 수 있어도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고 싸우고 있고 일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눈에 안 보이는 끈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게 엮어 주시도록 미사 중에 기도 하고 또 우크라이나에서도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아멘!)
군사기지 없는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 강정마을 생명 평화미사
- 강우일 주교님(녹취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