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강우일 주교님 강정생명평화미사(3월)

센터알리미 0 1,477 2022.03.31 10:52

2022330일 수요일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강정생명평화미사

 

1독서 - 이사야 49,8-15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 복음 - 요한 5,17-30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강론 : 강우일 주교(녹취록)

+ 찬미 예수님

먼 데에서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벚꽃과 함께 새로운 봄에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미사 참례하시는 분 중에 애기를 낳아 보신 분들이 몇 분 안 계신 것 같은데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기가 태어나면, 제가 경험한 게 아니니까,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가 이야기해 주신 것을 지금 제가 전하는데요. 정작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를 품에 안으면서 산모는 그 순간에 뇌에서 갑자기 신경 전달 물질인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카테콜아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 제3자가 보기에는-금방 태어났기 때문에 핏덩이에 지나지 않는 갓난아기가-산모인 엄마한테는 (그 핏덩이가) 호르몬의 분비 덕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로 보이는 것입니다. 엄마한테는. 그래서 이 아기를 위해서라면 정말 세상의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는 기쁨과 평화를 맛보고 불과 몇 분 전에 있었던 끔찍한, 정말 온몸이 으스러져 나가는 그런 끔찍한 출산의 고통을 깨끗이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오늘 첫째 독서 이사야서에서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시온은(예루살렘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바빌론 유배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몇십 년이 지나도 뭔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잊어버리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렇게 느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이스라엘에게 이사야 예언자는 '아니다. 하느님은 결코 잊으실 분이 아니다.'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잊을 수 있을지언정 하느님은 너희를 잊지 않으신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벳자타라는 연못가에서 38년을 앓아온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두고 아무도, 이 사람을 연못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연못 속에 넣어 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진 사람, 예루살렘 주민으로부터 안중에 없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셔서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라고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주민 모두가 너를 잊어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너를 잊지 않고 계신다.'라는 것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유다인 지도자들이 '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느냐?' 하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년 동안 예루살렘 주민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버려둔, 잊어버린 병자였지만 하느님 아버지는 결코 잊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앞에 나타나셔서 그를 즉시 병고에서 해방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증명하시려고 치유를 단행하셨습니다. 안식일이란 하느님 창조의 은총을 감사하고 경축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안식일은 원래 사람도, 가축도 모든 고생과 노역과 노동에서 해방되어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 온전히 평안을 누려야 하는 시간이 안식일입니다. 38년이나 아팠던 병자가 치유 받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아버지가 가장 바라시는 해방이고 안식일에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그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 안식일에 들것을 들고 걸어가서는 안 된다고 트집 잡는 유다인들의 그 마음은 정말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한 좁은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고 '지금은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과 해방이 이루어져야 될 그 순간이다. 그런데 들것을 들고 몇 발자국 걷는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냐!'(하십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다고, 하느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고. 그렇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난 선거가 끝나고 나서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비슷한 심경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선거 끝난 다음 저는 여러 사람에게서 '멘붕'이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심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가, 과거를 돌이켜 보면 좀 비틀거리기는 했어도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잘 나가다가 거꾸로 역주행을 또 하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제 마음이 심히 '거시기'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타이르고, 우리를 일깨워주시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당장 눈앞에 겪는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 부정적인 현실들, 좌절하고 싶은 상황들() 우리가 보더라도 절대로 주님께서 우리를 잊으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아마 탈핵 정책을 뒤집어엎을 것 같고, 또 여러 가지 역사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전진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뒤집어엎으려 하는 그런 시도들이 일어나리라고 봅니다. 아침 뉴스에서 들었는데 임대차 3법을 뜯어고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대차법이라는 게 결국은 가난한 사람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만든 법인데, 2년 전세 살고 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더 있고 싶으면 2년 더 있어서 4년을 이사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법인데 그걸 뜯어고쳐서 완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많은 걸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무시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정의를 외치고 그분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또 선포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않으시고 잊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비무장평화의섬 제주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반대싸움 5431일 강정생명평화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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