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강우일 주교님 강정생명평화미사(8월)

센터알리미 0 12 08.14 13:54

연중 19주간 목요일 2025.8.14.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여호수아 3,7-10ㄱㄴㄹ.11.13-17 마태오 18,2119,1

 

나는 지난 84일에서 8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 다녀왔다. 86일이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지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일본의 주교단 전원과 함께 한국에서도 인천, 의정부, 춘천 교구 주교님들과 나까지 4, 그리고 미국에서도 원폭을 실험한 산타페라는 곳의 주교님과 워싱톤과 시카고 교구의 주교님들이 함께 공동으로 원폭으로 목숨을 잃은 모든 희생자들을 위해 그리고 다시는 그런 참혹한 핵폭탄이 투하되는 비극이 재현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나는 히로시마 행사에만 참석하고 돌아왔지만 일본과 미국 주교단은 89일 나가사키 투하 80주년까지 참가하였다.

 

80년 전 히로시마의 인구가 35만 정도였다고 하는데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으로 그해 말까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14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로도 방사능에 피폭되었다가 각종 암이나 질병에 걸려 죽어간 이들이 몇십만 명이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다. 그런데 이 14만 희생자 중에 조선인이 3만여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3만여 명의 조선인 희생자들 중 경상남도 합천 출신이 70%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 집 본가가 합천이어서 옛날부터 합천 사람들이 히로시마에서 많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는 간간히 듣고 있었다. 지금도 한국의 히로시마 원폭피폭자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유족들 대다수가 합천 사람들이다. 왜 그렇게 히로시마에 합천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는지를 피폭자협회 회원들에게 물었더니 합천 주민들이 대다수 가난한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히로시마에 군수공장이 집결되어 일자리가 많았고 적지만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가기 시작했고 나중에 그들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연줄연줄 가세하여 그렇게 많아졌다고 했다. 오늘날도 제일 지저분하고 위험하고 힘든 일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 몫인 것처럼 당시도 공장에서의 힘든 노동은 가난한 이주민들 몫이었던 것이다.

 

이번 원폭80주년 추모제에 참석하며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합천 출신이지만 해마다 열리는 일본 교회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86일 원폭기념 행사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를 식민지로 삼고 지배한 일본, 원폭을 투하한 직접적인 가해자 미국, 그리고 피해자인 한국에서 주교들과 신자들이 함께 주님의 제단을 둘러싸고 미사를 봉헌하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 민족을 36년간이나 수탈하고 억압하고 수백만을 징용으로 동원한 일본,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만의 생명을 박탈하고 서서히 고문하며 죽어가게 한 미국도 아직 국가 차원에서 한 마디도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청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세 나라의 주교들과 신자들이 주님의 제단을 에워싸고 함께 미사성제를 거행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는 뼈아픈 과거를 딛고 함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함을 다짐하였다. 이번 모임에서 한, , 3개국의 주교들은 다시는 인간 생명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는 핵무기는 만들지도 말고 보유하지도 말고 포기하자고 세계를 향하여 호소하는 선언을 채택하여 발표했다.

 

그리고 나는 85일 또 다른 장소에서 개신교, 불교, 천주교 신자들이 초교파적으로 조선인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별도의 자리에 초대되어 그곳에서 조선인 희생자들의 고통과 한을 생각하며 추모하는 기원을 올렸다. 히로시마에서 희생되신 우리 선조들에게 드린 말씀을 오늘 여러분 앞에서 다시 읊어보겠다.

80년 전 오늘 이곳 히로시마에서 미증유의 폭발과 섬광으로 목숨을 잃으신 조선인 희생자들께 삼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인들께서는 오늘 살아있는 저희가 겪는 고통과 슬픔, 두려움과 불안의 경계를 무한히 초월한 곳에 계시니 저희가 올리는 애도와 위로의 말씀이 무슨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당신들께서 겪으신 그 참극을 저희가 상기하고 되새김으로써 다시는 이 세상에서 당신들께서 뒤집어쓰신 재앙과 비극이 재현되지 않게 저희가 다짐하고 또 뒤따르는 후손들이 그 다짐을 이어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당신들은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너 낯선 땅 이곳 히로시마에서 넉넉지 않은 임금에도 고달픈 노동을 견디어내며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셨습니다. 그러다 여름 더위가 한창인 이 8월에 상상도 못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뜨거운 불덩어리를 뒤집어쓰셨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의 모든 건물이 날아가고 도시가 사라져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부모, 형제, 친지가 형태도 찾지 못하게 사라졌습니다. 직접 불의 폭풍에 날아가지 않고 숨이 붙어 있는 이들도 모두 머리카락이 타버리고 살이 녹아내렸습니다.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폭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피폭당한 분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외상을 입지 않으셨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원폭증이 온몸을 점령하고 원인 모를 고통과 상처와 피곤으로 생명의 기운을 잃어가셨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병고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두려움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인류가 개발한 이 미증유의 핵폭탄은 지옥의 사신이 보낸 인류 역사상 최악의 역병이었습니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피폭 2세대, 3세대 중에 그 역병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류가 다시는 이런 광기 어린 재앙에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를 저희는 진심으로 기도하고 다짐하며, 만방을 향해 아직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외칩니다. ‘지옥의 사신이 보낸 무기를 포기하시오!’ 고인들께서도 저희가 당신들께서 겪으신 그 끔찍한 고통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늘에서 굽어살펴주소서!

 

히로시마 사흘 후에 떨어진 나가사키 원폭 때도 7만여 명이 죽고 또 그 후로 계속 원폭증으로 천천히 죽어갔다. 직접 원폭에 피폭당한 이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자녀 세대 2, 3세까지도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지금 한국에도 피폭자 2세 협회가 따로 조직되어 있다. 인간 생명을 가장 잔인하고 가장 오랜 세월을 두고 짓밟고 괴롭히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무기를 다시는 사용하지 말자는 의미로 유엔에서 핵무기금지조약을 만들었는데 현재로 93개국이 가입을 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 중 핵보유국들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고, 우리나라 정부도 원폭을 두 차례나 맞은 일본 정부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 많은 시민들이 참혹하게 죽어나간 것을 보고도 회심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은 국가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도록 평범한 우리 시민들이 그들을 압박하고 그들의 완악한 영혼을 넘어뜨려주시도록 하느님께 우리는 청원하고 두드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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