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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십시오

센터알리미 0 1,355 2017.05.27 11:45

 깨어나십시오.

                       드멜로 SJ <깨어나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줄도 모르긴 하지만 잠들어 있습니다. 잠든 채 태어나고 잠든 채 살며, 잠 속에서 혼인하고 잠 속에서 자녀를 낳으며, 깨어나 본 적이라곤 없이 잠 속에서 죽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일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신비가들이 - 가톨릭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그들의 신학이 무엇이고 종교가 무엇이든 - 한 가지 것에 이구동성으로 동의합니다. 즉, 모든 것이 좋다. 모든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비록 매사가 뒤죽박죽이더라도 모든 것이 좋다고 합니다. 확실히 이상한 역설이죠.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 없습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점잖은 어른이 아들의 방에 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얘야, 일어나거라!” “일어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 “왜 싫어?”

“세 가지 이유 때문에요. 첫째 거긴 너무 시시하고, 둘째 아이들이 성가시고, 셋째 전 학교가 싫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그래, 그럼 난 네가 왜 반드시 학교에 가야하는지 세 가지 이유를 말해 주마. 첫째 그건 네 의무이고, 둘째 네 나이가 마흔 다섯 살이고, 셋째 넌 교장이기 때문이다. ”

 

 

일어나십시오. 잠을 깨십시오. 여러분은 어른들입니다.

 

 

깨어나십시오. 장난감 놀일랑 이제 그만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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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잠을 자며 잠꼬대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며 꿈을 꾸고 있는데 그것이 참인 줄, 현실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깨어나십시오. 현실로 돌아오십시오.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내 껍데기- 거짓 나를 내려놓는다는 말이고

그리하여 참 자신으로 드러나 그 참자신이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크 네포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탈주병과 사제 

 

 

어느 날 한 젊은 탈주병(전쟁터에서 도망한 병사)이 적의 눈을 피해 숨으려고 어느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를 친절히 대하였고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탈주병을 찾으러 온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탈주병의 행방을 묻자 그들은 겁에 질리게 된다. 병사들은 동이 트기 전까지 탈주병을 내놓지 않으면 마을에 불을 지르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사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사제를 찾아가 조언을 청했다.

 

 

탈주병을 적의 손에 넘겨 줄 것인가, 아니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심을 하면서 사제는 성서를 읽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새벽녘이 되어 그는 우연히 다음과 같은 말씀을 발견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요한12:50)

 

 

사제는 성서를 덮고 병사들을 불러 탈주병의 은신처를 말해 주었다. 그래서 탈주병이 끌려가 살해 된 후 마을에서는 사제가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잔치가 베풀어졌다.

 

 

그러나 사제는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자기 방에 남아 있었다. 그 날 밤에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묻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였소?" 하자 그는 "저는 탈주병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말하기를 "당신은 구세주(메시아)를 넘겨 준 것을 모르는가?" 하자 사제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불안에 떨며 대답했다.

 

 

그러자 천사는 말하기를 "성서를 읽는 대신 단 한번이라도 그 소년을 찾아가 그의 눈을 응시했더라면 당신은 그 사실을 알았을 텐데"라고 하였다.

 

 

 

 

     과거와 안녕하고 현재를 깨어 살기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두루 구경한 후 고향집으로 돌아오기로 하고 길을 떠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그 여정 어디선가 지혜로운 성자를 만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여인은 퍽 아름다웠고 행색도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커다란 등짐에, 양 어깨에는 가방을 매고, 손에는 보따리까지 든 채 힘들게 숨을 몰아쉬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이 거울같이 맑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호숫가에 이르렀습니다. 이 호수는 조용한 날에 새가 그 위를 날면 퍼덕이는 날갯짓이 수면 위에 공명음을 일으켜 음악처럼 들린다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잠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짐에서 낡은 종이를 꺼내더니 그것을 들여다보며 한숨짓고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던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그 사람은 우아한 옷차림을 하고 얼굴은 온화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인이여, 이 호수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호수인데 그것은 보지 않고 무엇을 보고 있나요?”“네, 잠깐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운 호수예요. 그런데 저는 한가하게 이 풍경을 즐길 수가 없어요. 10년 전 친구 하나가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는 바람에 저는 몇 년을 너무 고생할 수 있었을 거예요. 보세요. 이 낡은 종이가 그때 차용증이랍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보여준 낡은 종이 말고도 짐 보따리에는 자신을 구박했던 오빠, 초등학교 때 자기를 놀렸던 친구들, 커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들의 표정이 담긴 사진과, 그때 쓴 일기, 관련되는 낡은 물품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깨진 컵, 코피를 닦은 손수건, 어떤 것은 곰팡이가 끼고 퀴퀴한 냄새까지 났습니다. 그 사람이 가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여인이여, 당신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기 위해 여행을 나서지 않았나요? 앞으로 더 멋진 풍경들을 보게 될 텐데, 그것을 충분히 즐기려면 이 낡은 짐들은 이제 모두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걸 버린다고요? 그럴 수 없어요. 이것들은 내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예요. 이 짐들 때문에 무거워서 다니기가 힘들지만 이것들이 내 인생을 증명해 주니 어쩌겠어요? 물론 나도 가는 곳마다 멋진 풍경을 보고 싶어요. 하지만 금방 괴로움과 슬픔이 되살아나 그 풍경에 빠져들 수가 없어요. 그러면 짐을 뒤져서 그와 관련된 사진이나 일기를 꺼내 보며 그때의 심경을 돌이키곤 한답니다.” 그 사람은 조금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행을 잘하라며 멀어져 갔습니다. 그 여인은 다시 커다란 짐들을 둘러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넘어 다음 여행지로 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곳에 이르렀을 때, 한 사람이 그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호수를 거쳐서 왔다면 거기서 아주 점잖고 우아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나요? 그 사람은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여정에서 최고의 지혜를 전수해주는 뛰어난 성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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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파리에서 한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때는 저녁이었고 지하철 안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나는 다리에 이상한 감촉을 느꼈고, 누군가 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잡았고, 유연한 동작으로 그러나 본능적으로 그 사람의 팔꿈치를 꺾으려 했다. 하지만 팔꿈치를 꺾으려는 순간, 숨을 멈추고 그 동작을 중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로써 그 행동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그 사람의 눈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왜 제 호주머니에 손을 넣습니까? 그럼 안 되죠. 뭐 필요한 게 있습니까? 있으면 말로 하세요!” 그의 눈은 둥그레지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는 꼬리를 내리면서 미안해하는 태도로 허둥대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소매치기의 팔을 꺾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런 행동은 더 많은 고통을 일으킬 뿐이다. 만약 이 사건이 내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직후에 일어났다면, 과연 이렇게 얌전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아마 나는 이전의 삶에서 행동해온 대로, 조건화되고 훈련된 본능대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 순간 무엇이 나의 행동을 중지시켰을까?

 

 

 

 

*** 이 사람은 19세 때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전쟁 영웅으로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 갔으나 2-50대 초반까지 전쟁후유증으로 폐인이 된다. 이후 틱낫한 스님으로 부터 명상수행하며 트라우마 치유를받게 되고 스님이 되어 평화운동가가 된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으로서 그는 그 어떤 작은 자극에도 본능적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살인 기계였다. 그런 그가 전철 안에서 팔꿈치를 꺾으려했던 것은 자신 의 보호본능에 의한 폭력적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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