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현장이야기

[전문]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의 모임에 감사와 응원의 합창

센터알리미 0 3,793 2020.12.15 20:02

강우일 주교님께서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의 모임'을 응원하는 글을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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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의 모임에 감사와 응원의 합창
을 보냅니다.

내가 제주에 온지 18년이 지났습니다. 내가 입도한 후 제주도에 새로 생긴 왕복 4차선 간선도로만 따져도 연북로, 애조로, 번영로 등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부분적으로 확장되고 새로 신설된 도로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로 신설과 확장이 이루어질 때마다 엄청난 면적의 숲이 사라지고 나무들의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몇 십 년씩 자란 나무들이 헤아릴 수 없이 찍혀나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제일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5.16도로에서 제주대학교로 들어가는 네거리에 있었던 너무 잘 생긴 국보급 소나무 고목 한 그루의 죽음입니다. 이 소나무는 교차로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이 소나무가 잘려나갔습니다. 적어도 백년은 훨씬 더 살았을 이 소나무에 누가 독을 주입하여 소나무가 순식간에 말라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소나무는 잘려나갔고, 도로는 한복판의 장애물이 사라져 널찍하게 뚫렸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조사하면 금방 밝혀질 텐데 당국에서는 누구도 조사한다는 이야기가 없었고 문제 제기를 하는 언론도 없었습니다. 나는 백주에 이런 낯 뜨거운 범죄가 저질러졌는데 왜 아무런 고발이나 문제 제기가 없는지 당시 도지사께 물었으나 아무 답이 없었습니다. 제주도정의 누구 한 사람이라도 제주의 생태계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미개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1970년대 학생 시절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부했습니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오래된 역사적 유적이 가득한 곳입니다. 로마 시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길이 좁습니다. 좁을 뿐 아니라 곳곳에 고대나 중세 유적이 버티고 서 있으면 그 때문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 교통이 수시로 막힙니다. 그래도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유적을 옮기거나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둡니다. 시내 곳곳에 숲이 우거진 공원이 있습니다. 공원 한복판으로 도로를 뚫으면 로마의 동서를 관통하는 지름길을 만들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차들이 공원 주변을 멀리 돌아가도록 내버려둡니다.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나무 한 그루도 절대 함부로 베어버리지 않습니다. 불편해도 참고 천천히 돌아갑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가보아도 로마는 옛날 모습 거의 그대로입니다. 2000년에 가톨릭교회가 대희년을 경축할 때 세계 각국으로부터 엄청난 수의 순례객들이 찾아왔습니다. 로마 시당국은 이 대희년을 맞이하며 자동차 매연으로 시커멓게 때가 묻은 거리의 조각상들을 몇 년 전부터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하면 전동 그라인더로 조각상 표면의 때를 베껴낼 것 같은데 사람 손으로 몇 년씩 걸려서 작은 솔로 때를 닦아냈습니다. 조각상에 상처를 내지 않고 최대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해 왔기에 로마는 ‘영원한 도시’라는 칭호를 얻고 50년이 지난 후에 방문해도 내가 학생 때 보던 모습 거의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수천 년의 문화를 지키고 자연을 살려 세계인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게 하는 지혜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로 선정된 제주의 비자림로가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제주도정은 얼마 전에 문제 많던 송악산 인근의 개발 계획을 중지한다는 ‘송악선언’을 발표하며 이제 난개발은 하지 않는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 비자림로에 대한 개발 계획에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1,2,3 구간을 나누어 어떤 구간은 공사하고 어떤 구간은 저감대책을 다시 세운다고 합니다. 비자림로는 2.94킬로 밖에 안 되는 그리 길지 않은 도로입니다. 이 짧은 구간을 조각내어 어떤 부분은 먼저 공사를 시작하고, 다른 부분은 저감대책을 세우겠다는 것은 당장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의미 없는 지연작전입니다. 생태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조사구간의 도로가 확장되어 차량통행이 많아지게 되면 주변 환경에 미치게 될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온 생태계는 무너지고 식물상의 변화는 곤충과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조류 등 다른 생물에게도 큰 피해를 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지난 6월 제주대학교 산업협력단이 제주도의 의뢰로 진행한 ‘비자림로 확,포장공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 이행에 따른 조사 용역’ 최종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비자림로에는 16종의 법정 보호종 조류와 1종의 법정보호종 양서류, 2종의 법정보호종 곤충류, 1종의 법정보호종 식물을 포함한 17종의 국가 적색목록 분포현황 및 희귀식물 큰 기러기 2종의 제주특별자치도 보존자원 대상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1967년 미국의 억만장자 다니엘 루드윅이 아마존 입구 근처 자리(Jari)강 유역에 36,421 평방킬로(제주도 2배)의 땅을 마련하여 6억 달러를 투자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숲을 베어내어 펄프를 생산하고,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쌀과 콩을 경작하고, 또 대규모 목장을 만들어 쇠고기를 생산 수출할 계획이었습니다. 원래의 숲을 완전히 베어내고, 이 가운데 제주도 정도의 면적에 경제성이 좋은 나무 1억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원래의 생태계를 벗어나서 식재된 상태에서 새로운 곰팡이에 감염되어서 황폐화되고 말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폐기되었고, 토지는 다른 그룹에 매각되었습니다. 이 실패는 생태적 무지와 오만이 불러온 결과였습니다.

비자림로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다녀본 사람은 다 압니다. 최근 교통량이 늘어나긴 했으나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는 아닙니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안가를 따라 나 있는 일주도로로도 불편 없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많은 이들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비자림로를 대폭 확장하려는 의도는 제주의 제2공항 건설과 직결되어 있는 것임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제주도는 생태계가 수용 가능한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방문객을 받고 있습니다. 쓰레기 처리장도 포화상태이고 처리 못한 쓰레기를 섬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가정에서 쏟아내는 생활하수와 축산단지에서 흘려보내는 오폐수는 종말처리장이 도저히 다 정화하지 못하고 바다로 흘려보냅니다. 제주의 수자원은 급격히 오염되고 있고, 먹는 물로 이용되는 지하수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림정수장은 폐쇄질산성질소 과다로 벌써 폐쇄했어야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제주도 방문객의 두 배 이상을 더 유치하기 위해 새 공항을 또 짓겠다는 것은 제주도를 오염도로 만들겠다는 것 밖에 안됩니다.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국민휴양지 제주도를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하는 행위는 단호히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는 제주도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문제입니다. 지금 어설픈 성장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보다 제주도의 생태계를 살리고 보존하는 것이 미래의 대한민국 국민, 아니 통일된 남북 주민들 모두를 위해 가성비 높은 투자가 될 것입니다. 제주도는 이 겨레가 두고두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쉴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지키고 가꾸어 가야 합니다.

2020년 12월14일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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