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가 8일 오후 도청 앞 계단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던 일행이 앉아있는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과정에서 공무원들과 자치경찰, 시위대, 취재진이 뒤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8일 오후 1시4분. 제주도청 출입기자들에게 한 통의 문자가 전송돼왔다. 1시10분에 원희룡 지사가 도청 정문을 통해 들어올 예정이며, 현장에서 충돌 우려가 있으니 언론 취재에 참고해달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하지만 잠시 후 같은 전화번호로 다시 문자가 전해졌다. 원 지사가 정문으로 출입할 경우 충돌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기자들이 공보관실로 전화해 원 지사의 집무실 복귀 시간을 묻자 오후 2시, 3시, 3시30분, 4시 등 기자들이 물을 때마다 시시각각 복귀 시간이 바뀌었다.
결국 원 지사는 4시 10분께 도청 로비 앞에 도착, 차에서 내린 뒤 전날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 후 다시 계단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던 일행이 앉아있는 계단 정면으로 걸어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원 지사의 진로를 확보하려는 도청 직원들과 자치경찰, 취재진, 그리고 피켓 시위중이던 일행들이 뒤섞이면서 도청 로비 앞 계단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원 지사는 며칠째 계단에서 농성중인 시위대 일행을 향해 굳은 표정으로 “여기는 민원인들이 다니는 통로입니다. 통행을 막지 말아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원 지사가 지나간 계단에 깔려 있던 피켓들은 원 지사와 도청 직원들로 인해 대부분 파손된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이날 오후 3시간여 동안 도청 앞 계단에서 있었던 상황이다.
이날 상황을 복기해보면 우선 기자들에게 원 지사의 정문 통행 시간을 알려준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자들에게 이같은 문자를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취재 협조를 요청하는 차원의 문자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대부분 원 지사가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시위대에게 시달리는 상황을 연출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충돌 우려가 있으니 언론 취재에 참고해달라’는 문자는 결국 원 지사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좋은 그림(?)’을 잡아달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굳이 원 지사의 의도대로 끝까지 기다려서 그가 시달리는 그림을 잡아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갔지만 30분, 한 시간을 지나 이미 두 시간 넘게 기다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집무실 복귀를 예고한지 3시간만에 나타난 원 지사는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앉아 있는 계단을 원 지사가 곧바로 걸어올라갔고, 이 과정에서 원 지사의 길을 열려는 도청 직원들과 시위대, 취재진들이 뒤엉켜 잠시 소동이 벌어지는 것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결국 원 지사로서는 국토부의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 착수 이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청 앞 농성천막 철거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이날 집무실 복귀 시나리오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 됐다.
원 지사는 계단을 통과해 집무실로 들어가던 중 복귀 시간을 예고해놓고 늦어진 이유를 묻는 다른 기자의 질문에 “다음 기회에 자세히 말하겠다”면서 즉답을 피해갔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궁금하다. 원희룡 지사는 집무실 복귀를 예고한 오후 1시10분 이후 3시간 동안 도청 밖에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원 지사에게 이날 집무실 복귀 시나리오처럼 언론을 이용한 ‘보여주기식’ 소통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소통의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원희룡 지사가 8일 도청 정문 앞 계단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던 일행을 앞에 두고 계단을 걸어
올라간 직후 계단의 모습. ⓒ 미디어제주